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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ght to Ten 8 살 부터 10살 Eight(여덟 살) 6살, 7살의 아픔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고 어느덧 8살이 되었다. 시각장애가 있지만 다행히 경미했다. 비장애인들과 같은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8살의 나는 그닥 활발하지 않은 아이였다. 비만으로 뚱뚱했고 제법 덩치도 있었지만 덩치에 비해 의기소침하고 의욕이 없는 아이였다. 특히 공부는 정말 못했고 받아쓰기를 100점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대부분 50점 60점 정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빠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였을지도... 라고 생각된다. 아버지의 부재, 이때문에 하루 아침 가장이 된 엄마, 새로운 동네로 이사, 삼남매를 책임져야되는 상황에서 돈을 벌러 가시는 엄마의 부재 그리고 형의 일탈 이런것들로 인해 알.. 2020. 9. 9.
Seven (일곱 살 ) 그날 Seven(일곱 살) 6살 아빠의 죽음은 많은 것들에 영향을 주었다. 엄마, 형, 나, 동생 모두에게...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하나님 대신 무속신앙을 믿었고, 집에 있던 성경은 부적으로 바뀌어 갔다. 평범한 전업주부의 삶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아빠의 회사를 운영해야 할 상황에 놓였고, 이젠 혼자 힘으로 삼 남매를 키워야 했고, 엄마로서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슈퍼 우먼이 돼야 했다. 그런 엄마를 7살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렸고 오히려 짐이었다. 집에 계시던 엄마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만 갔다. 하루하루 그전 엄마의 모습은 멀어져만 갔다. 아침에 자식들을 학교, 유치원에 보내고 전쟁터에 나가 여자로서 엄마로서.. 2020. 7. 22.
One to Six(한살 투 여섯살) One to Five(한 살 투 다섯 살) 1989년 겨울이 오기 조금 전 M타운에 태어난 아이 사업가 아빠, 전업주부 엄마, 제법 터울이 있는 형 그렇게 4번째 가족으로 태어났다 부족한 것 없었고, 오히려 풍족하게 살았다. 2년 후 아빠와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딸 까지 낳으며 우리 가족은 5인 가족으로써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우리 삼 남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어릴 때 비만이었고, 출생신고를 태어난 다음 해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1989년에 태어났지만 주민등록상은 1990년으로 되어있다. 내가 디케이 89 or 90 인 이유이다. 아빠의 뜻에 따라 삼 남매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1년을 더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형을 제외한 나와 여동생은 본래 .. 2020. 7. 20.
프롤로그 -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태어날 때는 유복한 가정, 자랄수록 가난해지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1989년 태어났지만, 세상은 1990년 생으로 기억하는 아이 2남 1녀 중 차남, 둘째 아들, 작은 오빠 , 친구 , 씨, 님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호칭으로 불리는 아이 6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자라온 아이 그리고 7살에 외눈의 삶을 시작한 아이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듯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아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재수 없이 학점은행제를 선택한 아이 가진건 젊음과 패기 밖에 없었던 20대의 아이 희망과 꿈으로 싱가폴에 해외취업을 한 20대의 아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9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30대의 아이 여전히 꿈, 희망,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30대의 ..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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