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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8

방구석 여포의 헌혈이야기 방구석 여포의 이야기 - 헌혈 헌혈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요즘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혈액이 부족하다고 한다. 헌혈을 장려하기 헌혈의 집 마다 다양한 상품을 주기도 한다. 나또한 10대 때 헌혈을 할때는 헌혈이 좋아서 라기 보단, 영화표를 얻기위해 헌혈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헌혈에 대한 생각을 바꾼 계기는 지인중 수술을 앞둔 사람을 보면서 이다. 지인은 수술을 앞두고 나와 같은 혈액이 더 필요하니 자신을 위해 헌혈을 해줄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흔쾌히 OK를 했다. 그때 새롭게 깨달았다. 나의 피가 정말 누군가에는 필요하구나... 내가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구나를 깨닫고 나서부터 헌혈을 어떤 목적이 아닌 순수하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게됐다. .. 2020. 8. 31.
싱가포르 첫출근 근무지는 연회장 첫 출근 설렘과 걱정 싱가포르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첫 출근! 9시까지 호텔로 출근해야 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7시가 조금 넘어 LRT를 타고 MRT로 바꿔 타고 비보시티에 도착해 호텔 셔틀을 타고 도착! 8시 반쯤에 HR 인사과에 도착을 했다. 호텔 유니폼을 받고 락커 키를 받았고, 유니폼으로 환복 한 후 호텔 GM 제너럴 매니저를 만나러 가게 됐다. 독일계 GM은 영어로 환영한다. 앞으로 소속된 부서에서 일 잘하기를 바란다 등 형식적인 인사를 전했다. 이후 내가 배정받은 부서로 가게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연회장! 호텔에서도 가장 빡센 부서이다. 고강도 육체노동과 그러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부서... Banquet. 연회장! 연회장.. 2020. 8. 4.
싱가포르 센토사섬 나의 첫직장 인사에 인사 며칠이 지나고, R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내가 출근할 직장에 인사차 인사과에 가기 위해서 였다. 내 직장은 시내도 아닌 시내에서 더 들어가야 하는 곳 센토사! 센토사는 섬이다. 싱가포르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니지만 과거에는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죽음의 유배지 죽음의 섬이였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 관광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수많은 호텔과 어트랙션들이 생겨난 휴양지이다. 내가 일할 호텔은 센토사에서 가장 최초에 생긴 호텔로 나름 특급 5성 호텔이였고,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다른말로는 조금은 낡았다. 비보시티라는 역에서 만나 택시를타고 센토사로 들어갔다. 자연과 어우러진 리조트에 내렸다. 푸른 야자수와 수 많은 나무에 둘려쌓여 있는 그리고 수 백마리의.. 2020. 8. 2.
싱가포르에서 첫날 그리고 나의 첫 해외 싱가포르 첫날 싱가포르에서의 첫날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의 첫 해외 그리고 첫 독립 낯선 곳에서의 시작!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소풍을 온 것 같았고, 수련회를 온 것 같았다. 며칠 있으면 다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사리 짐을 풀 수 없었다. 아니 짐을 풀기 싫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다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가졌다. 같이 사는 형들의 따뜻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의 싱가포르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고민과 걱정을 가득 안고 지나가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싱가포르에서 워킹비자를 정식으로 받기 위해 시내로 나가야 했다. 어제 헤어진 R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사는 숙소를 나와 조금 .. 2020. 7. 31.
싱가포르로 가자! 싱가포르로 가자! 20대 초반의 나는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했다. 해외로 가자! 목적지는 싱가포르! 왜? 해외로 가려고 결정했을까? 그때 당시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학벌도 재력도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었다. 학점은행제를 마친 가난한 나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 조금이라도 특별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영어도 제대로 배우고 경험도 쌓고 일석이조 특별한 경험을 토대로 조금이라도 뒤쳐진 나의 학벌을 뒤집어 버리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가족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가난한 집이 싫었고 가난한 삶이 싫었고 하루하루 한 숨 밖에 나오지 않는 가족의 상황이 싫었다. 이대로 내 삶이 그저 그렇게 되는 게 싫었다. 왜?.. 2020. 7. 24.
Seven (일곱 살 ) 그날 Seven(일곱 살) 6살 아빠의 죽음은 많은 것들에 영향을 주었다. 엄마, 형, 나, 동생 모두에게...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하나님 대신 무속신앙을 믿었고, 집에 있던 성경은 부적으로 바뀌어 갔다. 평범한 전업주부의 삶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아빠의 회사를 운영해야 할 상황에 놓였고, 이젠 혼자 힘으로 삼 남매를 키워야 했고, 엄마로서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슈퍼 우먼이 돼야 했다. 그런 엄마를 7살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렸고 오히려 짐이었다. 집에 계시던 엄마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만 갔다. 하루하루 그전 엄마의 모습은 멀어져만 갔다. 아침에 자식들을 학교, 유치원에 보내고 전쟁터에 나가 여자로서 엄마로서.. 2020.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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